나는 양주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어느덧 그 카페도 10년차가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나이 19살에 카페를 시작했는데..
19살이 커피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고, 장사를 하면 얼마나 할 줄 안다고
정말 아무것도 모른채 시작했다.
그 결과는? 거의 실패.
하지만 여기서 내 이야기가 끝나면 재미없지 않겠나?
내 인생은 항상 스토리가 있다.
카페를 하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가장 기억나는 추억이 하나 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주겠다.
오픈 당시 우리 카페 커피 가격은 3800원이었다.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아 손님이 없던 시절
나는 대학과 병행하여 카페를 운영했기 때문에
학교 과제를 하며 손님을 기다렸다.
열심히 과제를 하던 중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저녁 8시경 멋진 신사분께서 커피 한잔을 주문하셨다.
손님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나는 정말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드렸던 것 같다.
커피가 완성되어 신사분께서 내게 만원을 주셨고,
나는 거스름돈 6200원을 드리려고 딸그락 거리던 중
신사분께선 안쓰러운 눈빛과 따뜻한 미소로
잔돈은 됐다며 '힘내라'는 말과 함께 유유히 사라지셨다.
아마 그 분은 19살 소녀가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이 많이 안쓰러우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만원을 받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많이 울었던 거 같다.
나는 감사하게도 좋은 부모님을 만나 남 부끄럼 없이 넉넉한 집안에서 살았는데
누군가에게 처량한 모습으로 비춰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부모님께 '돈을 버는게 이렇게 힘든 건가요?',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는게 더 많이 벌겠어요.' 하면서 눈물을 닦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당시 아버지는 내게 정말 단호하셨다.
아버지 : "포기하는 건 너의 몫이지만, 더 이상의 너에 대한 투자와 기대는 없을 거다."
이 말씀을 하시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정말 무서웠다.
19살의 투덜거림을 한번쯤 들어주실만도 한데 정말 날 강하게 키우셨다.
그렇게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카페를 계속 했고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에 맞춰 카페 연구를 엄청 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3년차 카페의 매출은 3배이상 오르게 되었고
오픈 이래 처음으로 카페 간판을 걸었다.
이름은 "커피스토리" 다.
커피스토리는 정말 흔한 이름이지 않나?
다른 카페와 이름이 같아 헷갈린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커피스토리로 정했다.
그 이유는
이 카페는 내 20대의 이야기와 손님들의 이야기가 쌓여 따뜻한 추억을 이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피스토리는
정말 수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고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365일을 일했다.
물론 나는 매일 일한 값으로 경제적 여유를 얻었다.
하지만 점점 몸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기운이 나지 않았고,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필수였다.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검도, 복싱, 볼링, 농구, 마라톤 등 정말 다양한 운동을 시도했다.
그런데 난 승부욕이 많은 터라
힐링이 아닌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다.
운동이 재미가 아닌 모든 것이 승부였다. 정말 피곤한 일이다.
그러던 중 나는 우연히 스크린 골프를 치러 갔다.
24살의 11월이었던 것 같다.
공을 하나도 못 맞췄다.
처음엔 오기가 생겼다.
그런데 오기가 생겨도 공은 맞지 않았다.
이 점이 너무 재밌었다.
재능을 넘어 실력이 필요한 운동이기에 더 흥미가 갔다.
바로 다음날 골프연습장을 찾아갔다.
그때만해도 골프는 대중적이지 않았고,
내가 사는 양주에는 더더욱 골프 프로가 레슨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동네에 있던 스크린 연습장을 끊었고
그 곳 사장님이 골프를 알려줬다.
이게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이지만
그 당시 참 감사했던 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 골프의 인생이 시작된다.
다음화 계속